레클리스“경주마 ”
원래 말은 겁이 많은 편이다. 중세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군마를 담당하던 말지기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말이 큰 소리를 들어도 기수를 낙마시키지 않는 훈련과, 말에게 마갑의 개념을 인지시켜 번쩍이는 병장기 앞으로 주저없이 돌진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일이었다. 인류가 말은 그렇게 많이 키웠음에도 이런 용감한 적성을 지닌 말이 소수인데다가 여기에 열이면 열 마리가 이 훈련을 통과하는게 아니니, 인류는 군마의 공급부족을 항상 달고 살았다. 별도의 군마화 훈련없이 총알과 포탄이 날아드는 전장 한복판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전투 물자를 수송한 레클리스가 정말 놀라울 정도로 강심장인 것이다.
[8] Reckless: Pride of the Marines, Andrew Geer, 1955, Part One, p.15-119. 저자 앤드류 기어 중령을 비롯한 미 해병대원들이 전 마주의 언급만 듣고 기록한 생애인데다, 전 마주가 자신의 본명을 비롯한 실제 사연을 드러내기 꺼렸기에 아래의 이야기에 각색이 있을 수 밖에 없음을 저자인 기어 중령도 인정하고 있다. (Geer 1955, p.14) 일단 레클리스는 한국마사회같은 한국 쪽 기록으로는 공식적으로 경주마로서 기록이 없다. (다만 신설동 경마장 시절 자료는 원체 구하기 어렵기도 하고, 경주마로 데뷔하기 전에 입대했기 때문에 기록이 없는거 아니냐는 주장이 있기도 하다.) 어미였던 아침해의 혈통과 전적은 관련 자료가 없기에 불명이며, 레클리스의 혈통과 정확한 품종 또한 알려지지 않았다.
[9] 작가에 의해 가명이라고 명시되어있고, 본명은 알려지지 않았다.
[10] 그냥 일만 시킨 것이 아니라 견습으로 들어갈 때 50엔의 계약금을 주기까지 했다. 이 당시 김혁문의 가족은 모아둔 돈이 15엔이 채 되지 않았고, 월 15전인 보통학교 학비조차 버거워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일본인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탐탁지 않게 여기며 김혁문에게 맡기기만 했다.
[11] 일본인들은 발음을 어려워하여 불꽃(Flame)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고 하는데, 해를 히(火)로 발음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12] 다 자란 후 어미와 외모가 다른 부분은 오른쪽 앞발의 색이 갈색이었다는 것 뿐이라고 한다.
[13] 이 망아지 시절에 들개한테 습격당한 일이 있었는데, 이 사건이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이후로도 개나 개과 동물을 보면 다 죽여버리려 할 정도로 날뛰었다고 한다.#
[14] 한강의 수위가 21세기 현재처럼 깊어진 것은 1987년에 김포대교와 잠실대교에 수중보가 설치된 후이다. 1950년에는 상대적으로 수위가 낮아 말이 그나마 헤엄쳐 건너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레클리스 덕분에 김혁문 일가는 한강 인도교 폭파 사건이 벌어지기 전 서울을 탈출할 수 있었다.
[15] Geer 1955, 80-84[16] 김혁문이 아침해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약 1년 후 해병대 장병들이 새 편자를 갈기 위해 서울경기장을 찾아왔을 때였다. 경마장에 있던 사람들은 망아지 시절부터 지켜봤던 아침해를 기억하며 환영해주었고, 장제사 일을 하던 김혁문은 아침해가 왔다는 소식에 헐레벌떡 뛰어와서 서로를 알아보고 머리를 맞대며 재회하였다. 하지만 해병대 장병들은 후술할 페더슨 중위가 아닌 사육사 레이텀 중사의 인솔하에 있었기에 장제사가 아침해의 전 마주였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일이 끝났을 때 레클리스의 발굽은 말끔히 정리되었고 장제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후 김혁문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Geer 1955, p.145-146)
[17] 페더슨 장비를 발명한 존 페더슨의 아들.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한 사병 출신 장교이다.
[18] 무반동총은 직사 화기이고 발사시 대량의 후폭풍이 발생하기 때문에 발사 즉시 위치가 노출되었다. 따라서 진지 전환을 하지 않으면 박격포와 포격의 일차 목표가 되었다.
[19]
[20] "위험천만한, 무모한" 이라는 형용사로, 무반동총(recoilless gun)과 발음이 유사한 데서 나온 언어유희. 실제로 무반동총은 무겁고 관통력이 약한데 반해 후폭풍 반경은 커서 위치가 노출되기 쉬운 상당히 위험한 무기였다.
[21] 일반인에게 익숙한 서러브레드의 평균 체중은 약 450kg이며 440kg 이하일 경우 작다고 인식된다.
[22] 레클리스는 아직 아침해였던 시절, 서울에서 피난을 갈 때 한강을 혼자 헤엄쳐 수차례 건너면서 김혁문 일가를 한명씩 태워다 준 비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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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레클리스는 아침해였던 시절 혼란스러운 피난 상황에서 혼자 힘으로 김혁문의 가족을 태우고 한강을 왕복해서 헤엄쳐 건너간 강심장이었다.
[25] 베가스 전초, 리노 전초, 카슨 전초. 이 지점을 성공적으로 방어한다는 것은 도박이라는 현지 지휘관의 심정에 따라 도박과 관련된 지명 이름이 붙었다.
[26] Geer 1955, p.133-139
[27] 말은 고통에 대단히 민감한 동물이고, 기억력이 좋아서 PTSD도 심하게 겪기 때문에, 특정 지점에서 큰 고통을 받으면 해당 지점을 기억하고 되도록 다시 가지 않으려고 한다. 따라서 말을 훈련시킬 때는 최대한 고통을 주는 일이 없도록 각별하게 주의를 기울인다. 실제로도 기적의 명마라는 이명까지 얻은 토카이 테이오는 잦은 골절로 고생을 했고 그 때문인지 의사를 무척 싫어했으며 하얀 옷을 입은 사람만 봐도 의사로 오인해 난동을 부린적이 있다. 비슷하게 일본 경마 역사에서 가장 개선문상에 가까웠다고 평가받는 황금 세대의 일원, 엘 콘도르 파사 또한 눈밭에서 한번 미끄러져 넘어진 후엔 죽을 때까지 물이나 눈이 조금이라도 고인 곳은 근처에도 가지 않았었다.
[30] 귀가 들어갈 구멍을 뚫은 군모를 종종 선물받았는데, 사진에서 쓰고 있는 호주군의 챙이 넓은 군모는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사진 촬영이 끝난 후 뜯어먹었다고 한다.
[31] 태백 근처에서 모처럼 방목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한 병사가 명령을 무시하고 등에 탄 적이 있는데, 2년여만에 사람을 태우자 예전에 경주마로서 훈련받을 적의 기억이 되살아났는지 갑자기 전력질주를 한동안 하다가 상쾌하다는 표정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 레 클리스 하사님의 지뢰밭 더비
[32] 전 세계 경주마계에서 어마무시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혈통의 시조로 미스터 프로스펙터의 친조부이자 노던 댄서의 외조부이자 일본 2대 아이돌호스인 오구리 캡의 친조부이다. 22전 21승에 2착 1회로 11연승, 10연승과 연대율 100%를 자랑한 명마중의 명마이자, 흑백 텔레비전 시대에 회색마인 덕분에 일반인에게도 눈에 잘 띄어서 더 큰 인기를 얻은 최초의 슈퍼스타 경주마였다. 21세기 현재 대다수 미국산 서러브레드에는 네이티브 댄서의 피가 흐르고 있다.
[33] 서러브레드는 속도를 위해 내구성을 희생한 품종이므로, 부담 중량이 65kg을 초과한 상태로 전속력으로 달리면 다리가 부러질 위험이 있다. 따라서 이 말도 안 되는 경기 조건은 귀하게 자란 서러브레드 왕자님은 못하지만, 자신들처럼 전장에서 구른 레클리스는 여태껏 그렇게 해왔다는 자부심을 해병대식으로 표현한 것이며, 레클리스를 자신들과 같은 해병으로 인정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34] 부산의 스펠링을 비틀어 업산(Upsan)으로 적고, 인생사의 굴곡을 나타내는 Ups and Downs에서 따온 말장난. 엡섬 다운즈(Epsom Downs) 경마장의 패러디로도 보인다.
[35] 그리고 미 해병대 측에서 도전장을 보낸 후 며칠 뒤, 네이티브 댄서는 켄터키 더비에서 생애 유일한 패배를 겪었다. (Geer 1955, p.144-145)
[36] 사실 우리가 초식이라 알고 있는 말과 소를 비롯한 거의 모든 초식동물들은 기회만 된다면 육식도 한다. 야생의 풀을 뜯다 보면 수많은 곤충도 자연히 같이 섭취하며, 생쥐 등 작은 동물을 잡아먹기도 한다. 다만 이들의 주식이 식물이며 중, 인간 같은 대형 동물을 사냥감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공격하거나 잡아먹지 않을 뿐이다. 무엇보다 내장기관 특성상 대량의 육식은 적합하지 않다. 그래도 소량이라면 가능하다는 뜻. 현존하는 동물 중 진짜 풀만 먹고 사는 순수 초식동물들은 코알라와 이구아나뿐이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면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며 상당한 열량과 단백질을 소모했을 레클리스에겐 건초보단 군인들이 먹을 고단백 고열량 식단이 더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37] 고열량 간식이어서 비만을 방지하기 위해 하루 2병으로 제한해야 했다고 한다.
[38] 몇몇 말들은 주인이 주는 맥주에 맛들려서 즐겨 마시기도 한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는 기네스 흑맥주를 주식처럼 마시고 광고 모델까지 했던 미국의 경주마 젠야타.
[39] 원래 초콜릿은 강력한 흥분제로 말에게 독성 물질로 작용하는 테오브로민이 포함되어있어서 소량만 먹어도 심혈관계 이상을 유발할 수 있는데, 레클리스는 신기하게도 포탄을 나른 후 쉬는 시간에 초콜릿을 먹으면서 원기를 찾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격렬한 전장을 오가면서 다져진 건강 덕분에 스트레스를 초콜릿으로 중화할 수 있었던 모양. 다만 병영식 메뉴인 초콜릿 푸딩만큼은 몸에 안 맞아서 먹은 후 설사를 했다고 한다. 다른 해병들도 자신들도 맛없어서 못 먹는 푸딩을 호기심 때문에 먹게 한 것에 미안해 했다고.
[40] Geer 1955, p.119-120
[41] 해당 책의 1부는 전 마주 김혁문의 일대기를 자세하게 서술하였고, 레클리스가 해병대의 훈련을 잘 따르고 사람과 잘 어울리는 성격으로 자란 것은 전적으로 김혁문의 공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42] 4성 장군인 해병대사령관과 동등한 예우이다.
[43] 전투 중 부상 입은 군인에게 주는 훈장
[44] 사병이 3년 단위로 일정 수준 이상의 징계를 받지 않을 경우 수여받는 훈장
[45] 함께 선정된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존 웨인 등 미국 역사를 함께한 인물들이 즐비하다.
[46] 해병대 중에서 가장 많은 훈장을 수여받은 루이스 "체스티" 풀러(Lewis "Chesty" Puller) 중장의 이름을 따왔다.